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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조건 없는 사랑(조건 없이 달려갈 것이다)

by 템포터블 2025.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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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없이 달려갈 것이다

 

밤은 깊었고, 창밖의 바람은 겨울 냄새를 품고 있었다. 낡은 시계 초침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깨우고, 아버지는 여전히 잠들지 못한 채 불 꺼진 거실에 앉아 있었다. 오래된 손전화기 화면에 아들의 이름이 뜬 게 벌써 세 번째였다. 하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아니, 받지 못했다. 아들이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도와줄 방법이 없다는 자책감이 그를 짓눌렀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강했다. 새벽 어스름에 집을 나서서 밤늦게 돌아오곤 했다. 손바닥엔 굳은살이 가득했고, 옷에는 늘 땀 냄새가 배어 있었다. “아버지는 괜찮다.”라는 말이 입버릇이었고, 가족을 위해선 어떤 일도 견뎌냈다. 하지만 세월은 강인한 그조차 늙게 만들었다.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해졌고, 손의 주름은 깊어졌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 ‘가장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신념만은 여전히 단단했다.

그날 밤, 전화기 너머로 들린 아들의 목소리는 젊은 날의 그 자신처럼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 이제 다 그만두고 싶어요.”
그 한마디는 아버지의 가슴을 무너뜨렸다.
한때 모든 걸 책임지던 사내가, 이제는 세상 앞에서 주저앉고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코트를 집어 들었다.
눈발이 흩날리는 새벽 거리로 나서며, 아버지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포기할 수 없다. 조건 없이 달려갈 것이다.”

그 길은 멀고, 차가웠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피로움도, 나이도, 자존심도 다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아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어떤 대가도 상관없었다.

버스정류장 불빛 아래에서 아버지는 잠시 숨을 골랐다. 차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지쳐 있었지만, 눈빛은 결연했다. 젊은 시절, 쓰러진 자신을 일으켜 세워주던 아버지의 손이 떠올랐다.
‘나도 그 손이 되어야 한다.’
그 생각 하나로 그는 다시 발을 내디뎠다.

아들이 사는 도시의 골목길에 도착했을 때, 새벽은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문 앞에 서서 벨을 누르기 전, 그는 한참 동안 손을 떨며 멈춰 있었다. 미안함과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하지만 곧 문이 열리고, 눈가가 젖은 아들이 서 있었다.
“아버지… 왜 이렇게 오셨어요.”
“그냥… 보고 싶더라.”
그 한마디에 아들은 고개를 숙였다. 말 대신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는 말없이 다가가 아들의 어깨를 감쌌다. 세상은 냉정하지만, 아버지의 품은 여전히 따뜻했다. 아들은 어린 시절처럼 그 품에 기대어 한참을 울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등이 전부를 말해주고 있었다.
‘괜찮다. 넘어져도 된다. 하지만 포기하지 말아라. 아버지는 너를 믿는다.’

시간이 흘러 해가 떠오르자, 방 안에는 오랜만에 따뜻한 공기가 돌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책상 위를 바라봤다. 미처 정리되지 못한 서류와 낡은 노트, 그리고 손때 묻은 커피잔이 있었다. 그 속에서 아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인생이라는 긴 싸움 속에서 잠시 지쳤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조용히 말했다.
“아들아, 세상은 쉽지 않다. 하지만 끝까지 버티면 결국 길이 열린다. 네가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아버지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면 네가 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 말에 아들은 고개를 들었다. 눈가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빛이 깃들었다.
“저도… 이제 다시 해볼게요. 아버지처럼.”

아버지는 미소를 지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아버지의 사랑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계산이 없는 사랑, 조건 없는 헌신이었다. 그는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그래, 그게 인생이지.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거야.”

그날 이후로, 아들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다시 출근길에 나섰고, 작은 일에도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매일 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오늘도 잘 버텼어요.”
그때마다 아버지는 늘 같은 말을 했다.
“그래, 그게 다야. 버틴다는 건 포기하지 않는 거다.”

어느덧 계절이 바뀌고, 봄이 찾아왔다.
아버지는 마당에서 작은 화분에 새싹을 심으며 미소 지었다.
비록 몸은 예전 같지 않았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히 청춘이었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아버지는 포기할 수 없다. 조건 없이 달려갈 것이다.”

그 말은 단순한 다짐이 아니라, 한 세대를 이어가는 사랑의 언어였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의 마음이 변해도,
아버지의 그 마음만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었다.
누군가를 끝까지 믿고, 지켜내고, 사랑하는 그 힘.
그것이 바로 ‘아버지’라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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