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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오늘하루도 ....

by 템포터블 2025.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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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으로 아버지로서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

 

 

 

오늘 아침도 평소처럼 시작됐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몸은 무겁고 머리는 멍했다. 그래도 일어나야 했다. 가장이란 이름은, 피곤해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묘한 책임의 무게를 품고 있었다.
부엌에서 밥 짓는 소리와 함께 식탁에 앉았다. 아내는 바쁘게 도시락을 싸고, 아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책가방을 챙겼다. 나는 조용히 밥 한 숟가락을 떠 넣으며, 어제 미처 다 지우지 못한 후회의 맛을 삼켰다.

출근길은 여전히 붐볐다. 사람들 얼굴은 각자의 피로와 계산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일 뿐이었다. 버스 창밖으로 스치는 회색빛 도심이 유난히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오늘따라 그 질문이 가슴속에 오래 맴돌았다.

회사에 도착하니 상사의 목소리가 아침 공기보다 더 차가웠다. 보고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시 쓰라 했다. 머릿속은 이미 복잡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네” 하고 고개를 숙였다.
가끔은 내 의견을 말하고 싶지만, 그럴 용기가 없다. 가장이란 자리는 언제나 감정보다 생계를 선택해야 한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점심시간, 창가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꺼냈다. 아내가 싸준 반찬은 평범했지만, 그 안엔 정성이 느껴졌다.
그런데도 입맛이 없었다. 어쩌면 반찬이 아니라, 내 마음이 식어버린 탓일지도 모른다.
회사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맑음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작아졌다.
‘나는 괜찮은 남편일까? 괜찮은 아버지일까?’
그 질문 하나가 점심 내내 목구멍에 걸린 듯 내려가지 않았다.

퇴근길, 동료들이 웃으며 술 한잔하자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대신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창가에 기대앉아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어느새 눈가엔 주름이 깊어져 있었고, 머리카락엔 흰빛이 묻어 있었다. 젊었을 땐 이렇게 될 줄 몰랐다. 그저 열심히 하면 가족이 행복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열심히’가 오히려 내 가족에게 거리감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도착하니 아이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책상 위에 숙제와 교과서가 어질러져 있었다. 아내는 소파에 기대앉아 조용히 TV를 보고 있었다.
“오늘 힘들었지?”
그녀의 물음에 나는 그저 “괜찮아”라고 답했다.
그 말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지만, 꺼내지 않았다.
괜찮다고 말해야 진짜 괜찮아지는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방 안으로 들어와 불을 끄고 누웠다.
천장에 비친 희미한 불빛을 바라보며 하루를 되짚었다.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하루였다.
직장에서의 성과도, 가정에서의 다정함도, 어느 하나 제대로 해낸 게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버텨야 이 집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가끔은 두려워진다.
아이의 눈빛 속에 실망이 묻어날까 봐, 아내의 표정에 포기가 스며들까 봐.
그럴 때마다 나는 더 웃는다. 괜찮은 척, 강한 척, 다 잘될 거라고 말한다.
그 거짓된 미소가 나를 지탱하는 유일한 힘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오늘도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책상 위에는 아직 못 낸 공과금 고지서가 있고, 내 마음엔 풀지 못한 무력감이 남아 있다.
하지만 내일 아침에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가장이라는 이름은, 포기 대신 반복을 택하는 사람의 또 다른 이름이니까.

잠들기 전, 아이 방 문을 살짝 열었다.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작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이 아이가 웃는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도 스스로를 그렇게 달래 본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가족의 기대에 다 닿지 못해도,
나는 여전히 이 집의 가장으로 남을 것이다.
비틀거리며, 흔들리며, 그래도 버텨내는 하루.
그게 오늘의 나였다.
그리고 내일도,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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